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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T. 리뷰 - 어린 시절 내 마음에 남은 외계인 친구

by 아침햇살 101 2025. 11. 28.

이티
이티

1982년 여름, 처음 만난 외계인

초등학교 때였던 것 같다. 극장에서 본것은 아니고 개봉하고 한참 후 TV에서 방영해줄때 처음으로 'E.T.'를 봤다. 당시에는 외계인 영화라고 해서 무서울 줄 알았는데, 영화가 시작되고 30분쯤 지나자 눈물이 났다. 못생긴 외계인이 이렇게 슬프고 사랑스러울 줄은 몰랐다.

스티븐 스필버그 감독의 이 영화는 1982년에 개봉했다. 지금 생각해보면 40년도 더 전 영화인데, 여전히 명작으로 남아있다. CG도 변변치 않던 시절, 인형과 특수분장으로 만든 외계인 한 마리가 전 세계 관객을 울렸다.

숲속에서 혼자 남겨진 작은 생명체

영화는 캘리포니아 숲에서 시작된다. 밤하늘에 우주선이 떠 있고, 외계인들이 지구의 식물을 채집하고 있다. 그런데 갑자기 사람들이 나타나면서 우주선이 급히 떠난다. 한 마리 외계인이 미처 타지 못하고 숲에 남겨진다.

그 외계인이 바로 E.T.다. 키는 1미터 정도에 피부는 주름투성이고 목은 길쭉하다. 솔직히 예쁘지 않다. 하지만 커다란 눈망울을 보면 뭔가 순수하고 착하다는 게 느껴진다.

E.T.는 집으로 돌아가려고 하지만 방법이 없다. 낯선 행성에 혼자 남겨진 거다. 배도 고프고 무섭다. 사람들이 자신을 잡으려고 쫓아다닌다.

엘리엇, 외로운 소년

한편 근처 집에는 엘리엇이라는 10살 소년이 산다. 헨리 토머스가 연기했는데, 당시 11살이었다고 한다. 엘리엇은 형과 여동생과 함께 엄마와 살고 있다. 아빠는 다른 여자와 멕시코로 떠났다.

엘리엇은 외롭다. 형은 자기랑 안 놀아주고, 학교에서도 친구가 별로 없다. 어느 날 밤 뒷마당 창고에서 이상한 소리가 들린다. 피자를 던져놓고 기다리니까 누군가 그걸 먹는다.

다음 날 밤, 엘리엇은 옥수수밭에서 E.T.를 발견한다. 둘 다 놀라서 비명을 지른다. 하지만 E.T.가 도망가지 않는다. 엘리엇도 그대로 서 있다. 뭔가 서로 통하는 게 있었던 것 같다. 둘 다 외로웠으니까.

방 안에 숨긴 비밀

엘리엇은 E.T.를 집으로 데려온다. 자기 방에 숨긴다. 형과 여동생 거티(드류 베리모어, 당시 7살!)에게만 비밀을 공유한다. 아이들은 약속한다. 어른들한테는 절대 말하지 않기로.

E.T.는 엘리엇의 방에서 지낸다. 인형들 사이에 앉아있으면 진짜 인형처럼 보인다. 엘리엇은 E.T.에게 물건들을 보여주며 이름을 가르쳐준다. "이건 시계, 이건 물고기, 이건 소우 피쉬(톱상어)."

E.T.도 조금씩 말을 배운다. "E.T. 전화... 집..." 목이 메는 목소리로 말한다. 집에 전화하고 싶다는 뜻이다. 자기 행성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거다.

둘 사이에 이상한 연결고리가 생긴다. E.T.가 맥주를 마시면 엘리엇이 학교에서 취한다. E.T.가 TV로 로맨스 영화를 보면 엘리엇이 여자아이한테 키스한다. 텔레파시 같은 게 통하는 거다.

집에 전화하고 싶어

E.T.는 집으로 연락할 방법을 찾는다. 엘리엇네 집 다락방에서 부품들을 모은다. 톱날, 우산, 포크, 엘리엇 엄마의 커피포트. 그걸로 통신기를 만든다. 정말 천재다.

할로윈 밤, 아이들은 E.T.를 유령으로 변장시킨다. 흰 천을 덮어씌우니까 진짜 유령 같다. 엘리엇은 자전거에 E.T.를 태우고 숲으로 간다. 거기서 신호를 보내려고.

그런데 그 장면. 보름달이 뜬 하늘을 자전거가 가로지르는 장면. 지금 봐도 마법 같다. E.T.의 능력으로 자전거가 하늘을 난다. 엘리엇의 환호성이 들린다. 이 장면이 영화 포스터에도 쓰였고, 나중에 스필버그의 영화사 로고가 됐다.

시들어가는 E.T.

E.T.는 신호를 보내는 데 성공한다. 이제 우주선이 올 거다. 하지만 E.T.의 몸 상태가 안 좋아진다. 피부색이 창백해지고 힘이 없다. 지구 환경이 안 맞는 건지, 아니면 너무 오래 떨어져 있어서 그런 건지.

엘리엇도 아프다. E.T.와 연결되어 있으니까. 둘 다 침대에 누워서 신음한다. 엄마가 놀라서 의사를 부른다. 그리고 집 안이 갑자기 난리가 난다.

정부 요원들이 들이닥친다. 우주복 같은 방호복을 입은 사람들이 집 안을 점거한다. E.T.를 연구하려는 거다. 집 전체가 거대한 비닐 텐트로 덮인다. 엘리엇과 E.T.는 격리된다.

의사들이 E.T.를 살리려고 애쓴다. 하지만 소용없다. E.T.의 심장이 멈춘다. 가슴의 붉은 불빛이 꺼진다. 엘리엇이 울면서 말한다. "돌아와... 제발..."

기적, 그리고 작별

E.T.의 시신을 관에 넣는다. 엘리엇이 혼자 있고 싶다고 한다. 관 앞에서 E.T.에게 말을 건넨다. "넌 내 가장 친한 친구였어." 그때 관 안에서 꽃들이 다시 살아난다. E.T.가 준 꽃들이.

그리고 E.T.의 가슴에 다시 불이 켜진다. 심장이 뛴다! E.T.가 손가락으로 하늘을 가리킨다. "집... 집..." 우주선이 오고 있다는 뜻이다.

엘리엇과 형이 관을 몰고 도망친다. 친구들도 자전거를 타고 뒤따른다. 요원들이 쫓아온다. 도로가 막혀서 더 이상 못 간다. 그때 E.T.가 다시 능력을 발휘한다. 자전거들이 떠오른다. 아이들이 하늘을 난다.

숲속 공터에 우주선이 내려온다. 이제 작별할 시간이다. 엘리엇이 E.T.를 안는다. E.T.가 빛나는 손가락을 엘리엇 이마에 댄다. "여기... 있을게..." 마음속에 남아있겠다는 뜻이다.

E.T.가 우주선으로 올라간다. 문이 닫힌다. 우주선이 떠오르면서 하늘에 무지개 같은 빛을 남긴다. 엘리엇이 하늘을 바라본다. 눈물을 흘린다.

40년이 지나도 여전히 울게 만드는 영화

얼마 전에 딸아이와 E.T.를 같이 봤다. 처음에는 "아빠, 이거 너무 옛날 영화 아니야?"라고 했는데, 보다가 울었다. 마지막에 E.T.가 떠날 때 진짜 눈물을 닦더라.

나도 40년 만에 다시 보면서 또 눈시울이 적셔졌다. 초등학교 때 봤을 때랑 다른 감정이었다. 그때는 외계인이 불쌍해서 울었다면, 이번에는 엘리엇의 외로움이 느껴져서 울었다. 아빠가 떠난 집, 친구도 없는 학교, 그 외로움 속에서 만난 유일한 친구가 E.T.였는데 그 외로움을 다시 감당해야하니.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본의 아니게 외로운 아이들이 보인다. 부모님이 바쁘거나, 친구 관계가 어렵거나, 혼자 있는 시간이 많은 아이들. 그 아이들한테도 E.T. 같은 친구가 필요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스필버그가 만든 마법

스티븐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들 때 31살이었다. 이미 '죠스(1975)'와 '미지와의 조우(1977)'로 유명했지만, E.T.는 또 다른 차원이었다. 블록버스터 감독이 이렇게 따뜻하고 섬세한 영화를 만들 수 있다니 지금 생각하면 조금 놀랍기도하다.

스필버그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많이 담았다고 한다. 부모님의 이혼, 외로웠던 유년기. 엘리엇은 어린 시절 스필버그 자신이었던 거다. E.T.는 그가 상상했던 완벽한 친구가 아닐까?

E.T. 인형은 카를로 람발디가 만들었다. 실제로 움직이는 로봇 인형이었다. 눈도 깜빡이고 목도 움직이고 표정도 변한다. 당시로서는 놀라운 기술이었다. CG로 만들지 않아서 더 실감난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도 빼놓을 수 없다. 자전거가 하늘을 날 때 나오는 그 웅장한 음악. E.T.가 떠날 때 나오는 슬픈 멜로디. 음악만 들어도 영화 장면이 떠오른다.

특수효과보다 중요한 것

요즘 영화들과 비교하면 E.T.의 특수효과는 단순하다. 외계인도 인형티가 나고, 자전거 나는 장면도 지금 보면 선이 보인다. 하지만 전혀 문제가 안 된다.

엘리엇을 연기한 헨리 토머스의 연기가 대단하다. 특히 E.T.가 죽는 장면에서 우는 연기. 실제로 스필버그가 헨리의 개가 죽었다고 상상하라고 했다고 한다. 그래서 진짜로 울면서 연기했다.

어린 드류 베리모어도 귀엽다. 거티가 E.T.를 처음 봤을 때 비명 지르는 장면, E.T.에게 인형들을 보여주는 장면. 자연스럽고 사랑스럽다. 이때 드류는 겨우 7살이었는데 벌써 연기를 잘했다.

아이들의 연기가 자연스러운 건 스필버그의 연출 덕분이다. 그는 아이들이 편하게 느끼도록 촬영장 분위기를 만들었다고 한다. 대본을 외우게 하지 않고 즉흥적으로 말하게 했다.

우정에 대한 영화

E.T.는 외계인 영화지만 사실은 우정에 대한 영화다. 외롭던 두 존재가 만나서 친구가 되는 이야기. 말이 안 통해도, 생김새가 달라도, 별이 다른 곳에서 왔어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이야기이다.

엘리엇과 E.T.는 서로를 위로한다. 엘리엇은 E.T.에게 지구를 보여주고, E.T.는 엘리엇에게 마법을 보여준다. 둘 다 외로웠지만 함께 있으니까 외롭지 않다.

마지막에 E.T.가 떠나야 할 때 둘 다 슬프다. 하지만 받아들인다. 진짜 친구라면 상대가 집으로 돌아가야 한다는 걸 이해하는 거다. 아무리 사랑해도 붙잡을 수 없는 작별이 있다.

E.T.가 "여기 있을게"라고 말하면서 엘리엇의 이마를 가리킬 때, 진짜 친구는 헤어져도 마음속에 남는다는 걸 말해준다. 그게 우정이고 사랑이다.

아이와 함께 보기 좋은 영화

요즘 우리 딸이 좋아하는 영화들은 대부분 디즈니 애니메이션이다. 화려한 CG, 빠른 전개, 액션 장면. 그것도 좋지만 가끔은 이런 영화도 보여주고 싶다. 천천히 흘러가는, 조용하지만 깊은 감동이 있는 영화. 솔직히 아직은 조금 무리라는게 느껴지기는 하다. 몇일전에 본 쿵푸펜더에 더 열광하는 말괄량이 아가씨라 더 그런거 같기도하다.

E.T.는 전연령 관람가다. 무섭거나 폭력적인 장면이 없다. 아이들이 보기에 안전하다. 하지만 어른이 봐도 감동적이다. 가족이 함께 보기 딱 좋은 영화다.

딸아이와 함께 보면서 이야기를 나눴다. "아빠도 어렸을 때 E.T. 봤어?" "응, 네 나이쯤 됐을 때." "그때도 울었어?" "많이 울었지." "나도 울었어." 그렇게 세대를 넘어서 감동을 공유한다.

영화를 보고 나서 딸이 물었다. "아빠, 외계인 진짜 있을까?" 나는 대답했다. "아마도 있을 거야. 우주가 이렇게 넓은데 우리만 있을 리 없잖아." "만약 E.T. 같은 외계인이 우리 집에 오면?" "숨겨줘야지, 당연히."

시대를 초월하는 명작

1982년 개봉 당시 E.T.는 대성공이었다. 박스오피스 1위를 지켰고, 전 세계적으로 8억 달러 이상을 벌었다. 당시로서는 역대 최고 흥행작이었다. 아카데미에서도 작품상 후보에 올랐고 음악상, 음향상 등을 받았다.

2002년에는 20주년 기념으로 디지털 리마스터링해서 재개봉했다. 스필버그가 몇몇 장면을 CG로 손봤다. 총을 무전기로 바꾸고, E.T.의 표정을 조금 더 다듬었다. 하지만 팬들은 오리지널 버전을 더 좋아했다.

40년이 지난 지금도 E.T.는 영화 역사에서 특별한 자리를 차지한다. 수많은 외계인 영화가 나왔지만, E.T.만큼 사랑받는 외계인은 없다. 무섭거나 강력한 외계인이 아니라, 작고 못생겼지만 착한 외계인.

마치며

E.T.를 보고 나면 하늘을 보게 된다. 저 멀리 어딘가에 E.T.가 무사히 집에 도착했을까? 엘리엇을 기억하고 있을까? 가끔 지구를 생각하고 있을까?

이 영화는 SF지만 판타지고, 아동영화지만 어른 영화다. 웃기면서도 슬프고, 가볍지만 깊다. 40년 전 영화지만 전혀 낡지 않았다. 좋은 영화는 시대를 초월한다는 걸 증명한다.

만약 아직 E.T.를 보지 않았다면 꼭 보시길. 특히 아이가 있다면 함께 보시길. 그리고 영화가 끝나고 아이가 "외계인이 진짜 있을까?"라고 물으면, "있을지도 몰라. 어쩌면 지금 이 순간에도 누군가를 찾고 있을지도"라고 대답해주시길.

E.T.는 집으로 돌아갔지만, 우리 마음속에는 영원히 남아있다. 그 빛나는 손가락, 커다란 눈망울, 그리고 "집... 전화..."라는 목소리와 함께.


영화 정보

  • 제목: E.T. the Extra-Terrestrial
  • 개봉: 1982년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헨리 토머스, 드류 베리모어, 디 월러스
  • 음악: 존 윌리엄스
  • 장르: SF, 가족, 드라마
  • 러닝타임: 115분
  • 평점: ★★★★★ (5/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아이와 함께 볼 영화를 찾는 부모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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