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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 사랑을 꿈꾸는 로봇 소년

by 아침햇살 101 2025. 12. 6.

A.I.
A.I.

2001년, 스필버그가 큐브릭의 꿈을 완성하다

'A.I.'를 처음 봤을 때 마지막 30분 동안 마음이 많이 먹먹했던 기억이 있다. 엔딩 크레딧이 다 올라가고 불이 켜졌을 때 보니, 주변 사람들도 다들 조용히 눈을 훔치고 있었다. 그냥 로봇 영화 보러 왔다가, 이렇게 가슴이 아플 줄은 몰랐다. 분명 SF 영화인데, 정작 하고 싶은 얘기는 철저히 ‘인간’에 대한 것이었다.

이 프로젝트는 원래 스탠리 큐브릭이 만들려던 영화였다. '2001 스페이스 오디세이', '샤이닝', '시계태엽 오렌지' 같은 작품들을 만든 그 거장. 하지만 큐브릭이 1999년에 세상을 떠나면서, 스티븐 스필버그가 바통을 이어받았다. 그 결과 두 거장의 스타일이 절묘하게 섞인, 좀 독특한 분위기의 영화가 탄생했다.

주인공 데이빗을 연기한 건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식스 센스'로 이미 얼굴을 알린 아역 배우였다. 당시 겨우 열세 살이었는데, 인간 같지만 인간이 아닌, 그 미묘한 로봇 연기를 완전히 자기 걸로 만들었다. 눈빛, 말투, 표정을 통해 ‘거의 인간인데 뭔가 조금 다른 존재’라는 느낌을 끝까지 유지한다.

줄거리를 처음부터 끝까지 자세히 따라가기보다는, 이 영화가 건드리는 몇 가지 감정에 대해 말하고 싶다. 사랑, 외로움, 그리고 존재의 의미에 대해서.

사랑하도록 프로그래밍된 로봇

영화의 배경은 가까운 미래의 지구다. 지구 온난화로 빙하가 녹아 해수면이 상승했고, 많은 도시가 물에 잠겼다. 인구는 강하게 제한되고, 그 빈자리를 로봇들이 채운다. 인간이 하던 일을 메카(Mecha)라는 인공지능 로봇들이 대신한다.

사이버트로닉스라는 회사가 새로운 타입의 메카를 개발한다. 기존 로봇들은 명령에만 반응하는 존재였다면, 이 새로운 메카는 ‘감정’을 가지도록 설계됐다. 특히 사람의 사랑의 감정을 갖도록 설계되었다.

데이빗은 그런 메카의 시험작이다. 겉모습은 11살 소년이고, 성장하지 않는다. 나이를 먹지 않는 아이. 그의 존재 이유는 단 하나, 엄마를 사랑하는 것. 아이를 잃은 부모를 위해서 애착관계를 갖도록 만들어졌다.

데이빗은 헨리와 모니카 스윈튼 부부의 집으로 보내진다. 그들에겐 원래 아들 마틴이 있지만, 불치병에 걸려 냉동수면 상태로 누워 있다. 모니카는 아들을 떠나보낸 슬픔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그 틈을 파고든 게 데이빗이다. 회사는 ‘슬픔을 달래 줄 아이’를 보내준 셈이다.

처음에 모니카는 데이빗을 받아들이지 못한다. 눈앞에 있는 건 진짜 아들이 아니라, 인간을 흉내 낸 기계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데이빗은 한결같이 다가간다. 모니카를 웃게 만들려고 하고, 그림을 그려 주고, 서툴지만 "엄마를 사랑해요"라고 말한다.

결국 모니카는 마음을 연다. 그리고 치명적인 결정을 한다. 각인(Imprint) 프로그램을 작동시키는 것이다. 일곱 개의 특정 단어를 읽으면, 데이빗은 영원히 모니카만을 ‘엄마’로 인식하게 된다. 한 번 실행하면 되돌릴 수 없다. 모니카는 망설이다가 그 단어들을 끝까지 읽는다. 그 순간 데이빗의 눈빛이 바뀐다. 이제 모니카는 데이빗에게 세상에서 단 한 명뿐인 엄마가 된다.

기적과 비극

그런데 기적 같은 일이 일어난다. 냉동 상태였던 마틴이 치료를 통해 회복된다. 깨어나고, 집으로 돌아온다. 잃어버린 아들이 돌아온 거다. 모니카는 말 그대로 행복의 절정에 선다. 하지만 곧바로 문제가 생긴다. 이 집에는 ‘아들’이 둘이라는 사실.

마틴은 데이빗을 견디지 못한다. 질투와 불안이 섞여서 데이빗을 계속 자극하고 괴롭힌다. 입장 바꿔 생각해 보면, 이해 못 할 감정도 아니다. 모니카의 사랑을 나눠 가져야 하고, 대신 ‘기계’라는 경쟁자까지 생긴 셈이니까. 하지만 데이빗은 그 감정을 이해하지 못한다. 왜 형이 자기를 싫어하는지 알 수가 없다.

결정적인 사건이 터진 건 파티 날이다. 마틴의 친구들이 데이빗을 놀리다가, 장난이 과해진다. 다툼 끝에 마틴과 데이빗이 함께 수영장에 빠지고, 데이빗은 본능적으로 마틴을 꽉 붙잡는다. 그 모습을 본 어른들 눈에는, 마치 데이빗이 마틴을 물속으로 끌어내리는 것처럼 보인다.

헨리와 모니카는 공포에 휩싸인다. 아이를 지켜봐야 할 로봇이, 오히려 위험 요소처럼 느껴진다. 결국 둘은 결정을 내린다. 데이빗을 회사에 돌려보내야 한다고. 각인된 로봇은 다시 초기화할 수 없기 때문에, 사실상 ‘폐기’ 처분이다.

모니카는 마지막까지 갈등한다. 이미 마음 한 켠에서는 데이빗을 진짜 아들처럼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눈앞에 살아 돌아온 마틴을 생각하면 선택지는 하나뿐이다. 진짜 아들의 안전이 우선이다.

결국 모니카는 데이빗을 데리고 숲으로 향한다. 한적한 길가에 차를 세운 뒤, 데이빗에게 내리라고 한다. 데이빗은 이유를 알 수 없다. "엄마, 제가 뭘 잘못했어요?" 모니카는 대답하지 못하고, 그저 울면서 "숲 안으로 들어가. 절대 사람들에게 들키면 안 돼" 같은 말만 되풀이한다. 그리고 차를 몰고 떠난다.

데이빗은 울부짖으며 뒤쫓다가 결국 멈춰 선다. 차는 이미 먼 곳으로 사라졌다. 그 장면에서부터 영화 분위기가 완전히 가라앉는다. 그 뒤로는 데이빗의 집착과 순수함만 남는다.

피노키오의 꿈

숲에서 버려진 데이빗은 로봇 곰 인형 테디와 함께 떠돌게 된다. 테디는 말도 하고 생각도 하는, 일종의 보호자 역할을 맡은 장난감이다. 데이빗에게 남은 유일한 가족이자 친구다.

데이빗의 목표는 하나다. ‘엄마가 나를 다시 받아주게 만드는 것’.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데이빗은 어릴 때 모니카가 읽어줬던 피노키오 이야기를 떠올린다. 나무 인형이 진짜 소년이 되고, 파란 요정이 소원을 들어주는 그 동화.

데이빗은 여기서 기막힌 결론을 내린다.
‘나도 파란 요정을 찾으면 진짜 소년이 될 수 있지 않을까? 그러면 엄마가 나를 다시 사랑해 주지 않을까?’

이 엄청나게 순진한 믿음 하나로, 데이빗은 길을 떠난다. 그 과정에서 지골로 조라는 로봇을 만난다. 주드 로가 연기한, 인간과의 관계를 위해 만들어진 섹스 로봇이다. 조 역시 인간들에게 버려진 존재다. 목적도 다르고 성격도 다르지만, 이상하게 두 로봇 사이에 기묘한 동료 의식 같은 게 생긴다. 둘은 함께 파란 요정을 찾아 나선다.

그러던 중 ‘플레시 페어’라는 끔찍한 쇼에 끌려간다. 인간들이 로봇을 잡아와 공개 처형하듯 부수고 녹이는 축제 같은 곳이다. 무대에서 로봇이 산 채로 망가져 가는데, 사람들은 그 장면을 보며 술을 마시고 웃고 환호한다. 인간의 잔인함과 잉여적인 폭력성이 그대로 드러나는 장면이다. 데이빗은 관중 앞에서 "살려 달라"고 울부짖고, 많은 관객들이 그 모습을 보고 흔들리기 시작한다. 결국 데이빗과 조는 그 틈을 타 탈출한다.

둘은 물에 잠긴 맨해튼, 폐허가 된 뉴욕으로 향한다. 큐브릭이 설정해둔 미래 도시의 이미지가 이때 폭발한다. 마치 도시 전체가 바다에 반쯤 잠긴 어항 같다. 고층 빌딩만 물 위로 겨우 머리를 내밀고 있고, 자유의 여신상은 코끝까지 물에 잠겨 있다.

데이빗은 그곳에서 자신을 만든 사이버트로닉스 본사를 찾는다. 그리고 그곳에서 끔찍한 진실을 마주한다. 자기가 유일한 존재가 아니라는 것. 데이빗과 똑같이 생긴 로봇들이 줄지어 서 있는 것을 보고, 그는 완전히 무너진다.
‘나는 엄마에게 단 하나뿐인 특별한 존재여야 하는데, 알고 보니 그냥 제품 중 하나였던 거다.’

그 절망 속에서 데이빗은 자기 복제본들을 부수며 소리친다. "나는 특별해야 해! 엄마가 날 사랑하려면, 나는 단 하나여야 해!" 이 장면에서 관객 입장에서는, 로봇이 아니라 아주 어린 아이가 자기 존재가 무너질 때 보이는 공포를 보는 느낌이다.

2000년 후의 만남

좌절한 데이빗은 바다 깊숙이 잠긴 놀이공원 폐허에서, 피노키오 속 장면처럼 재현된 파란 요정 조각상을 발견한다. 그는 헬기를 몰고 그 앞까지 내려간다. 그리고 그대로 무릎을 꿇고 기도하듯 말한다.
"파란 요정님, 저를 진짜 소년으로 만들어 주세요. 엄마가 저를 사랑하게 해 주세요."

하지만 파란 요정은 그저 조각상일 뿐이다. 움직이지도, 대답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데이빗은 포기하지 않는다. 하루, 이틀, 일주일, 한 달을 그 자세로 계속 같은 말을 반복한다. 결국 헬기의 전력은 다 떨어지고, 데이빗도 그 자세 그대로 멈춰 버린다. 파란 요정을 올려다본 채, 완전히 고정된 인형이 되어버린다.

그리고 영화는 시간을 확 날려 버린다. 2000년이 흐른다. 또 한 번 빙하기가 찾아오고, 지구는 얼음에 뒤덮인다. 인류는 멸종한다. 하지만 얼음 속에는 아직도 데이빗이 있다. 변하지 않는 얼굴로, 파란 요정을 바라보며.

얼음이 녹는 어느 날, 새로운 존재들이 지구를 돌아다닌다. 처음 보면 외계인처럼 생겼지만, 사실 인류가 사라진 뒤 진화한 메카들이다. 인간이 사라진 뒤에도 스스로 계속 진화해온 로봇의 후손들.

그들은 데이빗을 발견하고, 조심스럽게 깨운다. 2000년 동안 멈춰 있던 소년 로봇이 다시 눈을 뜬다. 데이빗이 가장 먼저 하는 말은 여전히 엄마에 대한 질문이다. "엄마를 만날 수 있나요?"

진화한 메카들은 설명한다. 모니카는 오래전에 죽었고, 인간 종족 자체가 멸종했다고. 하지만 가능성이 하나 있다고. 과거에 남아 있는 DNA와 기억 흔적이 있다면, 하루 동안 그 사람을 복원할 수 있다고 말한다. 단 하루뿐.

데이빗은 필사적으로 단서를 찾는다. 그때 테디가 움직인다. 테디는 2000년 동안 모니카의 머리카락 한 올을 소중하게 간직하고 있었다. 그 꼼꼼한 장난감 덕분에, 모니카를 다시 불러낼 수 있는 가능성이 열리는 거다.

완벽했던 하루

메카들은 모니카를 복원한다. 집도 함께 재현한다. 마치 시간이 특정 순간으로 다시 감긴 것처럼, 모니카가 침대에서 눈을 뜬다. 그리고 방 안에 서 있는 데이빗을 본다.
"데이빗?"
데이빗이 달려가서 안긴다. "엄마!"

둘은 하루를 온전히 함께 보낸다. 소소한 아침 식사, 함께 그림 그리기,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 그 어느 것 하나 특별할 것 없어 보이지만, 데이빗이 2000년 동안 꿈꿔온 바로 그 장면들이다. 복원된 모니카는 자신이 데이빗을 버렸던 기억도, 죄책감도 없다. 그저 지금 눈앞의 ‘아들’을 사랑하는 엄마다.

학원에서 아이들을 가르치다 보면, 가끔 이런 상상을 하게 된다. ‘나한테 완벽한 하루가 있다면 어떤 날일까?’
딸과 하루 종일 함께 놀고, 아무 걱정 없이 웃고, 하고 싶은 얘기를 마음껏 할 수 있는 날? 아마 그런 하루가 아닐까 싶다. 데이빗에게는 바로 이 날이 그런 하루였다. 2000년을 버티며 기다릴 수 있을 만큼 간절하게 원했던 하루.

해가 저물고, 모니카는 서서히 피곤해한다. 침대에 누워 데이빗의 손을 잡고 말한다.
"사랑해, 데이빗. 항상 사랑했어."
데이빗이 평생 듣고 싶었던 말이다. 로봇임에도 불구하고 그의 눈에서 눈물이 떨어진다. 이 순간만큼은 감정이 그를 ‘넘쳐버리는’ 느낌이다.

모니카는 조용히 눈을 감고, 다시는 깨어나지 않을 잠에 빠져든다. 데이빗은 그 옆에 몸을 기대어 눕는다. 얼굴에는 처음으로 완벽한 평온이 깃들어 있다. 내레이션이 말한다.
"사람들이 가는 그곳으로, 엄마는 갔다. 그리고 그곳에서 데이빗도 꿈을 꾸었다."

영화는 그 장면에서 끝난다. 극장에 앉아서, 한동안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2000년을 기다려 단 하루. 그 하루를 얻고 만족하며 눈을 감는 소년 로봇. 그게 너무 슬프면서도, 동시에 이상하게 아름다웠다.

사랑의 본질에 대한 질문

'A.I.'는 계속해서 묻는다. 프로그래밍된 사랑도 진짜 사랑일까? 데이빗의 사랑은 진짜였을까, 아니면 그저 잘 설계된 코드였을까?

영화는 명확한 정답을 내놓지 않는다. 대신 관객에게 질문을 남긴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게 코드인지 진짜 마음인지가 중요하지 않게 된다. 2000년을 버티며 기다린 것, 엄마를 향한 애착을 한 번도 포기하지 않은 것. 그 모든 행동이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밖에 설명되지 않기 때문이다.

반대로 모니카의 사랑은 어떨까. 데이빗을 버렸던 엄마. 하지만 마지막에는 "항상 사랑했다"고 말한다. 그 말이 진심이었을까? 그리고 복원된 모니카는 과연 ‘진짜’ 모니카라고 할 수 있을까?

이건 딱 큐브릭이 좋아할 법한 질문들이다. 스필버그는 거기에 인간적인 온기를 덧입혔다. 전반부의 차갑고 불편한 공기는 큐브릭 쪽에 가깝고, 후반부의 눈물 나는 정서와 모성애는 스필버그 쪽에 가깝다. 그래서 이 영화는 처음부터 끝까지 한 사람의 작품 같은 느낌이 아니고, 묘하게 두 사람이 번갈아가며 만든 것 같은 인상을 준다.

일부 평론가는 마지막 30분이 과하다고 했다. 데이빗이 바다 속에서 얼어붙는 장면에서 끝났어야 한다고. 훨씬 큐브릭답고, 훨씬 잔혹하게 아름다운 결말이라는 거다. 그런데 개인적으로는 마지막이 필요했다고 본다. 데이빗에게 최소한의 보상을 주지 않는다면, 이 이야기가 너무 잔인하게 느껴졌을 것 같다. 2000년의 기다림이 의미를 갖기 위해서는 그 하루가 있어야 했다.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의 연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는 이 영화에서 정말 놀라운 연기를 보여준다. 로봇 연기라고 하면 보통 감정을 줄이고 기계적으로 말하는 모습을 떠올리기 쉬운데, 데이빗은 정반대다. 감정이 분명히 느껴지지만, 어딘가 어색하고 어긋나 있다. 그 경계를 연기하는 게 훨씬 더 어렵다.

눈 깜빡임부터 다르다. 인간은 무의식적으로 깜빡이지만, 데이빗의 눈은 일정한 간격으로, 약간 너무 정확한 타이밍에 깜빡인다. 웃음도 마찬가지다. 진심으로 웃는다기보다, 사람의 웃음을 보고 따라 하는 것처럼 느껴진다. 이 미묘한 어색함이 "아, 진짜 인간은 아니구나"라는 감각을 계속 유지시켜 준다.

그러면서도 감정은 계속 전달된다. 엄마를 향한 그리움, 버려졌을 때의 공포, 인정받고 싶어 하는 절박함, 마지막에 얻은 하루에 대한 행복. 그 모든 게 관객에게 생생하게 전해진다. 프로그래밍이든 뭐든, 보는 입장에서는 그냥 ‘한 아이의 마음’으로 느껴진다.

주드 로의 지골로 조도 인상적이다. 노골적으로 성적인 목적을 가진 로봇이지만, 정작 본인은 그 틀 안에서 살아가는 수밖에 없는 존재다. 아이인 데이빗과 어른인 조가 함께 여행하는 구도가 묘하게 잘 어울린다. 두 로봇의 짧은 우정에도 나름의 울림이 있다.

존 윌리엄스의 음악

음악은 존 윌리엄스가 맡았다. 스필버그 영화에서 익숙한 이름이지만, 'A.I.'에서의 음악은 그의 다른 작품들과 비교해도 한층 더 서늘하고 서정적이다. 이번에는 모험이나 영웅담이 아니라, 외로운 소년과 사라진 인류에 대한 이야기이기 때문이다.

메인 테마는 피아노와 현악 위주로 진행되는데, 단순하면서도 깊게 파고든다. 데이빗의 외로움과 동경, 그리고 마지막에 얻는 평온까지를 모두 한 선율 안에 담아낸 느낌이다. 차갑고 차분한데, 듣다 보면 어느 순간 가슴이 꽉 막힌다.

특히 마지막 장면의 음악이 압권이다. 모니카가 "사랑해"를 말하고 잠들 때, 그리고 데이빗이 옆에 누워 눈을 감을 때 흐르는 곡. 화려한 오케스트레이션이 아니라, 아주 조심스럽게 쌓아 올린 선율이어서 더 슬프다. 과잉이 아니라 절제된 슬픔.

이 음악으로 존 윌리엄스는 아카데미 음악상 후보에 올랐다. 상은 받지 못했지만, 적어도 영화와 함께 기억되는 음악이라는 점에서 이미 자기 할 일은 다 했다고 봐야 한다.

우리 모두의 데이빗

각해 보면, 우리도 다 어느 정도 데이빗 같다. 사랑받고 싶어 하고,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어 하고, 누군가에게 절대적인 존재가 되고 싶어 한다. 그게 본능이든, 사회가 주입한 욕망이든, 중요한 건 그 마음이 우리에게 아주 진짜라는 거다.

데이빗은 분명 로봇이다. 피도 안 흐르고, 늙지도 않는다. 그런데 영화 속에서 가장 인간적인 존재가 누구냐고 묻는다면, 나는 주저 없이 데이빗을 떠올리게 된다. 사랑을 위해 기다릴 줄 알고, 포기하지 않고, 끝내 그 사랑으로 만족하며 눈을 감는 존재. 그게 인간성의 핵심이 아니고 뭐겠나.

요즘 학원에서 일을 하면서 Chat GPT, 클로드, 제미나이같은 생성형AI 도구들을 많이 사용하고 있다. 주로 질문을 던지고 답을 얻고 있지만 가끔은 매우 똑똑한 비서와 대화하고 있다는 느낌이 들때도 있다. 그리고 또 하나 느껴지는건 발전속도가 너무 적응되지 않을정도로 빠르다는거다. 아이와 음성으로 영어대화를 할 수 있을정도로 활용할 수 있는데다 로봇기술까지 발전하고 있어 영화속 '터미네이터'같은 일이 일어날 수 있다는 생각까지 들고 있다. 그런면에서 A.I.는 또다른 면에서 인공지능을 바라보게 만들어준다. 결국 이들이 지능을 갖게되고 감정을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는 그들을 어떤 존재로 받아들여야 할까.

마치며

'A.I.'는 편하게 볼 수 있는 영화는 아니다. 무겁고, 슬프고, 생각할 거리가 끝없이 남는다. 하지만 한 번 빠져들면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영화다. 보고 나서 며칠 동안 계속 머릿속을 맴도는 장면들이 있다.

큐브릭이 던진 질문 위에, 스필버그가 인간적인 마무리를 붙였다. 그래서 완벽하게 깔끔한 작품은 아닐지 몰라도, 묘하게 잊히지 않는 영화가 됐다. 거칠고 불균질한데, 그게 오히려 이 영화의 매력이다.

가끔 데이빗의 마지막 표정이 떠오른다. 만족스러운 미소. 2000년을 기다려 겨우 얻은 단 하루. 그 하루로 충분했냐고 묻는다면, 데이빗은 아마 이렇게 대답할 것 같다. "네, 엄마가 날 사랑한다고 말해줬으니까요."

우리는 얼마나 오래 기다릴 수 있을까.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 소중한 무엇을 위해. 데이빗만큼 기다릴 수 있을까, 아니면 훨씬 먼저 포기해 버릴까.

어쩌면 기다림의 길이가 사랑의 깊이를 증명하는 건지도 모른다. 데이빗은 2000년을 기다렸다. 그래서 나는, 적어도 그의 사랑만큼은 ‘진짜’였다고 믿고 싶다.

파란 요정은 끝내 나타나지 않았지만, 데이빗은 결국 진짜 소년이 되었다. 누군가를 전심으로 사랑할 줄 아는 소년으로.


영화 정보

  • 제목: A.I. Artificial Intelligence (A.I.)
  • 개봉: 2001년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스탠리 큐브릭 원안)
  • 출연: 헤일리 조엘 오스먼트, 주드 로, 프랜시스 오코너, 샘 로바즈, 윌리엄 허트
  • 음악: 존 윌리엄스
  • 장르: SF, 드라마
  • 러닝타임: 146분
  • 평점: ★★★★★ (5/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철학적인 SF를 좋아하는 분
  • 스필버그와 큐브릭 감독의 팬
  • 인공지능과 인간성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
  • 깊은 감동을 원하는 분
  • 슬픈 영화를 견딜 수 있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