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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 윅스 노티스(Two Weeks Notice, 2002) -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의 완벽한 케미스트리

by 아침햇살 101 2025. 11. 25.

투 윅스 노티스
투 윅스 노티스

뉴욕, 그리고 예측 가능하지만 편안한 로맨스

며칠 전 오랜만에 친구를 만났다. 대학 때부터 알고 지낸 친구인데, 최근에 이직을 했다고 한다. "새 회사는 어때?"라고 묻자 한숨부터 나왔다. 상사가 너무 의존적이라는 것이다. 퇴근 후에도 수시로 전화하고, 사소한 것까지 다 물어본다고. "그만큼 너를 신뢰해서 그런거잖아. 좋게 생각해"라고 말하며 위로해 줬다. 친구 이야기를 듣다가 문득 떠오른 영화가 있었다. "혹시 '투 윅스 노티스' 봤어? 네 상황이랑 똑같은데?"

어떤 영화는 첫 10분만 봐도 결말을 알 수 있다. '투 윅스 노티스'가 그런 영화다. 워커홀릭 변호사와 철없는 재벌 2세의 만남, 티격태격하다가 사랑에 빠지는 이야기. 뻔하다면 뻔한 설정이다. 그런데도 이 영화가 사랑받는 이유는 무엇일까. 아마도 '뻔함'을 '편안함'으로 승화시킨 두 배우의 매력 때문일 것이다.

2002년 크리스마스 시즌에 개봉한 이 영화는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라는 두 로맨틱 코미디의 제왕이 만난 작품이다. 그 해 겨울, 극장에서 이 영화를 봤던 기억이 난다. 당시엔 그저 재미있는 로맨틱 코미디라고만 생각했는데, 직장 생활을 하고 나서 다시 보니 완전히 다른 영화로 느껴졌다. 마크 로렌스 감독은 두 스타의 매력을 200% 활용하면서도, 현대 직장인의 애환을 절묘하게 담아냈다.

루시 켈슨, 하버드 출신의 이상주의자

산드라 블록이 연기한 루시 켈슨은 하버드 로스쿨 출신의 환경 변호사다. 브루클린의 오래된 건물들을 지키고, 노숙자 쉼터를 보호하며, 대기업의 횡포에 맞서 싸운다. 하지만 이상만으로는 현실을 바꿀 수 없다는 것을 깨닫고, 결국 악의 축(?)인 웨이드 코퍼레이션에 입사한다.

루시는 전형적인 A형 인간이다. 체스 챔피언, 하버드 수석 졸업, 완벽주의자. 하지만 정작 자신의 인생은 엉망이다. 데이트할 시간도 없고, 친구들과 놀 여유도 없다. 일이 곧 인생인 사람. 현대 사회의 수많은 워커홀릭들이 공감할 만한 캐릭터다.

산드라 블록은 이런 루시를 딱딱하지 않게 연기한다. 진지하면서도 코믹하고, 똑똑하면서도 허술하다. 특히 테니스 경기 장면에서 승부욕에 불타는 모습이나, 거짓말할 때 코를 만지는 버릇 같은 디테일이 캐릭터를 생생하게 만든다.

조지 웨이드, 능력은 있지만 철없는 상속자

휴 그랜트의 조지 웨이드는 부동산 재벌의 아들이다. 하버드를 나왔지만 공부보다는 여자와 파티에 더 관심이 많았다. 회사 일은 형이 다 하고, 자신은 얼굴마담 역할만 한다. 그런 그가 유일하게 의존하는 사람이 바로 루시다.

조지는 점점 루시에게 의존하게 된다. 어떤 양복을 입을지, 무엇을 먹을지, 심지어 어떤 여자와 데이트할지까지 루시에게 묻는다. 새벽 3시에 전화해서 하찮은 질문을 하는 것은 일상이다. 루시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어른아이가 되어버린다.

휴 그랜트는 이런 조지를 자신의 페르소나로 완벽하게 소화한다. 능글맞으면서도 매력적이고, 철없으면서도 순수하다. 특히 그 특유의 더듬거림과 어색한 미소가 조지라는 캐릭터와 찰떡같이 어울린다.

RV 안에서의 진실 게임

영화의 전환점은 조지의 형 결혼식 에피소드다. 루시와 조지가 RV(레저용 차량)를 타고 함께 가는 길. 좁은 공간에서 24시간을 함께 보내며 서로의 진짜 모습을 보게 된다.

특히 기억에 남는 건 주유소 화장실 장면이다. 루시가 화장실 열쇠를 달라고 하자, 주유소 직원이 "여자 화장실은 고장"이라고 한다. 결국 남자 화장실을 쓰는데, 조지가 밖에서 망을 봐주는 장면. 별것 아닌 것 같지만, 이런 소소한 배려가 관계를 변화시킨다.

결혼식장에서 루시가 다른 남자와 춤추는 것을 보며 질투하는 조지, 그리고 조지가 다른 여자와 있는 것을 보며 씁쓸해하는 루시. 두 사람은 서로에 대한 감정을 자각하지만, 인정하지 않으려 한다.

2주간의 통보, 그리고 깨달음

루시는 결국 사직서를 낸다. 2주간의 통보 기간. 이 2주 동안 두 사람의 관계는 미묘하게 변한다. 후임자를 뽑는 과정에서 조지는 루시가 얼마나 특별한 존재였는지 깨닫는다. 루시 역시 조지와의 일상이 단순한 업무 이상이었음을 알게 된다.

하버드 출신의 똑똑한 변호사 준(알리시아 위트)이 후임으로 오면서 상황은 복잡해진다. 루시보다 더 젊고 예쁘고 똑똑한 준. 하지만 조지가 원한 것은 그런 완벽함이 아니었다. 그가 원한 것은 루시였다.

영화의 클라이맥스는 루시가 새 직장으로 떠나는 날이다. 조지는 뒤늦게 공항으로... 아니, 이 영화는 그런 뻔한 엔딩을 택하지 않는다. 대신 조지가 루시가 지키려 했던 커뮤니티 센터 앞에서 시위를 하는 장면을 보여준다. 루시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을 함께 지키려는 조지의 모습. 이것이 진짜 사랑이다.

뉴욕이라는 도시의 초상

'투 윅스 노티스'의 또 다른 주인공은 뉴욕이다. 센트럴 파크, 브루클린 브리지, 타임스퀘어, 그리고 코니 아일랜드까지. 영화는 뉴욕의 다양한 얼굴을 보여준다. 특히 루시가 살고 있는 차이나타운의 작은 아파트와 조지의 트럼프 타워 펜트하우스의 대비가 인상적이다.

양키 스타디움 장면도 기억에 남는다. 루시가 조지에게 야구를 설명하는 장면. "이게 바로 아메리칸 드림이야"라고 말하는 루시의 모습에서 그녀의 가치관이 드러난다. 부자들의 스카이박스가 아닌 일반석에서 핫도그를 먹으며 야구를 보는 것. 그것이 루시가 생각하는 진짜 뉴욕이다.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 각자의 매력을 200% 발휘

이 영화가 성공한 가장 큰 이유는 두 주연 배우의 케미스트리다. 산드라 블록의 발랄함과 휴 그랜트의 능청스러움이 절묘하게 맞아떨어진다. 두 사람이 티격태격하는 장면들은 테니스 랠리를 보는 것처럼 리듬감이 있다.

특히 인상적인 건 두 배우 모두 나이 40을 전후한 시점이었다는 것. 20대의 풋풋한 로맨스가 아닌, 30대 후반 커리어우먼과 40대 초반 남자의 성숙한 로맨스. 이들의 사랑은 가슴 뛰는 열정보다는 편안한 동반자를 찾아가는 과정에 가깝다.

예측 가능함의 미학

'투 윅스 노티스'는 새로운 이야기를 하려 하지 않는다. 오히려 관객들이 예상하는 그대로 흘러간다. 하지만 그것이 이 영화의 약점이 아니라 강점이다. 때로는 예측 가능한 것이 주는 안정감이 필요할 때가 있다.

금요일 저녁, 피곤한 하루를 마치고 집에 돌아왔을 때. 복잡한 스릴러나 무거운 드라마보다는 이런 영화가 필요하다. 웃을 타이밍에 웃고, 설렐 타이밍에 설레고, 해피엔딩으로 마무리되는 영화. '투 윅스 노티스'는 그런 영화다.

일과 사랑, 영원한 현대인의 딜레마

영화가 던지는 질문은 단순하지만 본질적이다. 일과 사랑 중 무엇이 더 중요한가? 루시는 일을 위해 사랑을 포기했고, 조지는 사랑 때문에 일을 대충 했다. 하지만 결국 둘 다 틀렸다. 일과 사랑은 선택의 문제가 아니라 균형의 문제다.

21세기가 시작된 지 2년째인 2002년, 이 영화는 현대인의 고민을 정확히 짚어냈다. 20년이 지난 지금도 이 고민은 여전히 유효하다. 오히려 더 심해졌을지도 모른다. 워라밸이라는 단어가 일상어가 된 시대. 하지만 여전히 우리는 루시처럼 살고 있지 않은가.


영화 정보

  • 제목: Two Weeks Notice (투 윅스 노티스)
  • 개봉: 2002년 12월
  • 감독: 마크 로렌스
  • 출연: 산드라 블록, 휴 그랜트
  • 장르: 로맨틱 코미디
  • 러닝타임: 101분

평점: ★★★★☆ (4/5)

 

예측 가능하지만 그래서 더 편안한, 두 스타의 매력이 충만한 로맨틱 코미디의 정석.

추천하고 싶은 분들:

  • 산드라 블록과 휴 그랜트의 팬
  • 복잡하지 않은 로맨틱 코미디를 원하는 분들
  • 뉴욕을 배경으로 한 영화를 좋아하는 분들
  • 일과 사랑 사이에서 고민하는 현대인들
  • 금요일 저녁에 가볍게 볼 영화를 찾는 분들

함께 보면 좋은 영화들:

  • 프로포절 (2009) - 산드라 블록의 또 다른 직장 로맨스
  • 노팅힐 (1999) - 휴 그랜트의 대표작
  • 당신이 잠든 사이에 (1995) - 산드라 블록의 초기 로맨틱 코미디
  • 뮤직 앤 리릭스 (2007) - 휴 그랜트와 드류 베리모어의 로맨스

P.S. 다음은 2009년작 '프로포절(The Proposal)'을 다룰 예정이다. 산드라 블록이 다시 한번 까칠한 커리어우먼으로 변신한 작품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