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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폴로 13 -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

by 아침햇살 101 2025. 12. 5.

아폴로 13
아폴로 13

1995년, 진짜 영웅들의 이야기

‘아폴로 13’을 처음 본 건 내 기억으로는 중학교 수업시간때 였다. 과학 선생님이 수업 시간에 보여주셨다. 아마도 교육적으로 도움이 되었기에 보여주었던거 같고 나는 결말을 이미 알고 있었다. 왜냐하면 실제 역사였기에 우주비행사들이 결국 무사히 귀환한다는 건 모두가 알고 있는 사실이었다. 그런데도 마지막 재진입 장면에서는 숨을 멈추고 보게 됐다. 통신이 끊기는 3분이 3시간처럼 느껴졌다. 결말을 알고도 이렇게 긴장하게 만드는 영화는 그때가 처음이었다.

론 하워드 감독의 이 영화는 NASA 역사에서 “가장 성공적인 실패”로 불리는 사건을 다룬다. 1970년 4월, 아폴로 13호는 달 착륙을 목표로 발사됐다. 하지만 우주에서 산소 탱크가 폭발하면서 임무는 즉시 중단된다. 목표는 ‘달 착륙’에서 ‘살아서 돌아오기’로 바뀐다. 3명의 우주비행사와 지상의 수백 명의 엔지니어들이 72시간 동안 벌인 사투가 기적을 만들어낸다.

선장 짐 러벨은 톰 행크스가 연기했다. 네 번째 우주 비행이었고, 드디어 달에 발을 디딜 기회였다. 하지만 운명은 달랐다. 케빈 베이컨이 잭 스와이거트, 빌 팩스턴이 프레드 헤이즈를 맡았다. 지상의 비행 책임자 진 크랜츠는 에드 해리스가 연기했는데, 실제 인물과 너무 비슷해서 크랜츠 본인이 보고 놀랐다는 이야기가 있다.

실제로 그들은 도저히 방법이 없을 것 같은 상황에서 살아남았다. 과학 지식만으로는 부족했다. 침착함, 팀워크, 끝까지 물고 늘어지는 집념이 함께 필요했다.

얼마전에 우리나라도 나로호를 우리나라의 민간회사에 기술을 이전하고 위성을 발사하는데 성공했다. 이것만 보면 새삼 미국이 무려 50년전에 인간을 달에 보냈다는 기술력이 존경스럽기도 하고 부러움이 앞선다.  

우주에서의 재난, 지상에서의 기적

“Houston, we have a problem.”
영화사에 남은 명대사다. 실제 통신 기록에는 “Houston, we’ve had a problem”이라고 되어 있지만, 영화에서는 더 극적인 현재형으로 바꿨다. 산소 탱크가 폭발한 뒤 우주선은 전력을 잃고, 공기는 새어나가고, 온도는 급격히 떨어진다. 사령선이 서서히 죽어가고 있었다.

유일한 희망은 달 착륙선이었다. 원래는 두 명이 48시간 사용할 용도로 설계된, 좁고 불편한 우주선. 이 안에서 세 명이 나흘을 버텨야 했다. 전력을 아끼기 위해 모든 시스템을 끈다. 난방도 꺼버린다. 우주선 내부 온도는 영하로 떨어지고, 숨을 내쉴 때마다 입김이 하얗게 나온다. 물도 부족해 탈수 증세가 나타난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점점 위험 수준으로 치솟는다.

지상의 NASA는 72시간 내내 불이 꺼지지 않는다. 엔지니어들이 교대도 제대로 하지 못한 채 시뮬레이터를 돌리고, 계산하고, 백보드를 채워가며 해결책을 찾는다. 그중 가장 인상 깊었던 장면이 이산화탄소 필터를 해결하는 장면이다. 사령선의 네모난 필터를 달 착륙선의 동그란 구멍에 맞춰야 하는 상황. 엔지니어들이 우주비행사들이 실제로 가지고 있는 물건들을 책상 위에 쏟아놓는다.
“우주선 안에 있는 건 이게 전부입니다. 이걸로 필터를 만들어야 합니다.”
덕트 테이프, 양말, 플라스틱 봉지, 각종 자잘한 부품들. 말도 안 되는 재료들로 결국 생명을 살릴 필터를 만들어낸다.

론 하워드 감독이 무중력 장면을 찍기 위해 실제 NASA의 무중력 훈련기를 사용했다는 사실도 흥미로웠다. 일명 ‘Vomit Comet(토하는 혜성)’이라고 불리는 비행기다. 포물선을 그리며 급강하하면 약 23초간 무중력 상태가 되는데, 이 23초를 600번 넘게 반복하며 촬영했다고 한다. 배우들과 스태프들이 정말 토할 지경이었다고. 하지만 그 덕분에 화면 속 무중력은 CG로는 만들기 힘든 ‘진짜 느낌’을 준다.

우주를 향해 있는 동안, 땅에서 기다리는 사람들

영화는 우주선 안의 긴장감만 보여주지 않는다. 지상의 가족들도 함께 비춘다. 짐 러벨의 아내 마릴린(캐슬린 퀸란)은 TV 앞에서 뉴스만 바라본다. 남편이 위험하다는 속보가 흘러나온다. 아이들이 묻는다.
“아빠 괜찮아?”
마릴린은 애써 담담하게 말한다.
“괜찮아. NASA가 데려올 거야.”

하지만 혼자가 되는 순간, 표정이 무너진다. 손가락으로 결혼반지를 만지작거리며 창밖을 바라본다. 밤하늘에 떠 있는 달을 보면서 생각한다. ‘저기 어딘가에 지금…’

프레드 헤이즈의 어머니가 인터뷰를 한다. 기자가 묻는다.
“걱정되지 않으세요?”
어머니는 굳세게 대답한다.
“아니에요. 우리 아들은 꼭 돌아올 거예요.”
카메라가 꺼지자마자 눈물이 쏟아진다.

딸이 어렸을 때, 출장을 자주 다닌 적이 있다. 일주일 이상 집을 비우기도 했다. 딸이 물었다.
“아빠 언제 와?”
“곧 갈게.”
“만약 안 오면?”
“꼭 갈게. 약속.”
아폴로 13호의 가족들도 비슷했을 것이다. 장담할 수 없는 약속이지만, 그래도 믿고 버텨야 하는 시간들.

영화는 이 가족들의 시간을 과장된 멜로드라마로 만들지 않는다. 그냥 가만히, 기다리는 얼굴을 보여준다. 그 조용한 기다림이 오히려 더 깊게 와닿는다.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

진 크랜츠 비행 책임자의 한마디는 영화 전체를 관통한다.
엔지니어들이 말한다.
“이건 불가능합니다. 전력이 너무 부족해요.”
크랜츠가 대답한다.
“그럼 가능하게 만드세요. 실패는 선택지가 아닙니다.”

에드 해리스의 연기는 절제돼 있지만 압도적이다. 크랜츠는 감정을 크게 드러내지 않는다. 목소리도 크게 올라가지 않는다. 그런데도 표정과 눈빛에서 긴장감과 책임감이 고스란히 느껴진다. 3명의 생명이 자신과 팀의 결정에 달려 있다는 걸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사람의 얼굴이다.

실제 진 크랜츠는 이 영화를 보고 크게 감동했다고 한다. “Failure is not an option”이라는 대사는 실제로 한 말은 아니지만, “NASA의 정신을 정확히 담고 있다”고 했다. 실패를 ‘전제’로 두고 시작하는 것이 아니라, 어떻게든 방법을 찾아내겠다는 태도 말이다.

우리집 아이에게 수학문제를 가르치면서 이 말을 떠올릴 때가 많다.
“아빠, 이 문제 너무 어려워요.”
“풀어보기는 해보긴 했어?”
“봤는데 모르겠어요.”
“얼마나 고민해봤어?”
“한 5분이요…”

아이에게 생각하는 힘을 키워주고 싶은데 생각만큼 잘 되지는 않는다.

아이에게 그런면에서는 이 영화가 무언가 도움이 될거 같기도 했는데 아직 보여주지는 못했다.
아폴로 13호 팀은 5분이 아니라 72시간을 고민했다. 먹지도 자지도 거의 못한 채, 같은 문제를 붙들고 씨름했다. 물론 수학 문제와 생사가 달린 우주 미션을 비교할 수는 없다. 하지만 ‘태도’는 분명 배울 수 있다. 쉽게 포기하지 않는 마음, 다른 방법을 시도해 보는 끈기, 필요할 땐 도움을 요청하는 용기등 아이가 영화를 보며 배웠으면 좋겠는데 우리아이는 아직 케이팝데몬헌터스에 열광하는 시기라 아쉽기만 하다.

재진입, 그리고 침묵의 3분

마지막 관문은 대기권 재진입이다. 우주선이 지구 대기권에 진입할 때, 마찰열 때문에 외벽이 거의 타들어갈 정도로 뜨거워진다. 이때 이온층 때문에 통신이 끊기는 시간이 생기는데, 보통은 3분 정도다. 문제는 아폴로 13호가 ‘보통’이 아니라는 점이었다. 배터리는 한계까지 쥐어짜 썼고, 우주선 각도도 수동으로 맞춰야 했다. 각도가 조금만 틀어져도 우주선은 튕겨나가거나, 반대로 너무 깊이 들어가 타버릴 수 있었다.

NASA 관제센터는 숨소리조차 줄어든다. 모두가 모니터를 바라보며 헤드셋을 쓰고 기다린다. 3분이 지나도 아무 소리가 들리지 않는다. 4분, 5분… 시간이 늘어날수록 사람들의 얼굴이 굳어간다. 실패했나… 하는 공기가 감돌기 시작한다.

나 역시 손에 땀이 났다. 이미 다 알고 있는 결말인데도. 우주비행사들이 살아 돌아온다는 역사를 알고 있는데도. 론 하워드의 연출이 그만큼 철저하게 몰입하게 만든다.

마침내 무전이 들려온다.
“Hello, Houston. This is Odyssey. It’s good to see you again.”
순간 관제센터가 터진다. 환호성, 박수, 포옹. 화면에는 세 개의 빨간 낙하산이 펼쳐진 우주선이 태평양을 향해 내려오는 모습이 잡힌다. 무사 착수, 귀환 성공.

결말까지 뻔히 아는 영화인데, 그래도 박수를 치게 된다. 나 역시 손이 먼저 움직였다. 그 순간만큼은 “실화 바탕 영화”라는 사실이 더 크게 다가왔다.

진짜 영웅주의란 무엇인가

‘아폴로 13’은 흔한 재난 영화와는 결이 다르다. 괴물도 없고, 폭군 같은 악당도 없다. 이 영화의 적은 ‘상황’ 그 자체다. 그리고 영웅은 한 명이 아니라 수백 명이다. 우주에 있는 세 사람과, 땅 위의 수백 명 엔지니어와 관제 인력들. 모두가 각자의 자리에서 자기 역할을 다하면서 하나의 기적을 만든다.

짐 러벨은 결국 달에 착륙하지 못했다. 평생의 꿈이 눈앞에서 사라졌다. 그러나 그 대신 다른 걸 증명했다. 위기 속에서의 리더십, 냉정함, 동료들을 향한 신뢰. 어쩌면 달에 발을 디디는 것보다 더 대단한 업적일지도 모른다.

영화 마지막엔 실제 짐 러벨이 카메오로 등장한다. 항공모함에서 귀환한 우주비행사들을 맞이하는 해군 장교로. 나이 든 러벨이, 톰 행크스가 연기한 ‘젊은 러벨’과 악수하는 장면이다. 현실과 영화가 가볍게 포개지는 순간이라 더 인상적이다.

론 하워드 감독은 이 작품으로 아카데미 감독상 후보에 올랐지만, 그해 상은 ‘브레이브하트’의 멜 깁슨에게 돌아갔다. 대신 ‘아폴로 13’은 편집상과 음향상을 받았다. 특히 제임스 호너의 음악이 영화 전체의 분위기를 잘 받쳐준다. 과하게 감정을 끌어올리는 대신, 필요한 순간에만 조심스럽게 밀어 올리는 음악이다.

마치며

‘아폴로 13’을 다시 볼 때마다 “인간이란 참 대단하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도저히 답이 없어 보이는 상황에서도 어떻게든 방법을 찾으려 한다. 서로의 지식을 모으고, 서로의 약점을 채우고, 끝까지 포기하지 않는다. 그게 인간의 위대함이다.

요즘 우리는 너무 많은 것을 쉽게 포기할 수 있는 시대에 살고 있다. 컴퓨터가 멈추면 리셋하고, 기계가 고장 나면 새로 사면 된다. 하지만 아폴로 13호에는 리셋 버튼도, 새로 살 우주선도 없었다. 그들이 가진 건 망가진 우주선과 제한된 자원, 그리고 서로뿐이었다. 그래서 더욱 간절했고, 그래서 더 위대했다.

딸아이가 고등학생쯤 되면 이 영화를 함께 보고 싶다. 그리고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
“너도 언젠가 정말 어려운 상황을 만날 거야. 그때 아폴로 13호를 떠올려봐. 불가능해 보이는 순간에도 방법은 있을 수 있다는 걸. 혼자 버틸 필요는 없다는 걸. 도와달라고 말할 수 있다는 걸. 그리고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걸.”

“실패는 선택지가 아니다.”
인생에도 그대로 적용할 수 있는 말이다. 물론 실제로는 실패할 수도 있고, 넘지 못하는 벽도 있다. 하지만 시도조차 하지 않으면 그건 시작도 못 해본 실패다. 아폴로 13호는 달에 착륙하지 못했다. 목표를 이루지 못했다. 그럼 실패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들은 살아서 돌아왔고, 그 과정에서 수많은 것을 배우게 했다. 그게 진짜 성공이다.

밤하늘을 올려다보면 달이 걸려 있다. 50년 전, 저곳까지 날아갔다가 무사히 돌아온 사람들이 있다. 죽을 뻔한 위기 속에서도 과학과 용기, 팀워크로 길을 찾았던 사람들. 그들 덕분에 우리는 우주를 좀 더 현실적인 꿈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됐다. “불가능”이라는 단어를 조금은 덜 두려워할 수 있게 됐다.

Houston, we don’t have a problem anymore.
We made it.


영화 정보

  • 제목: Apollo 13 (아폴로 13)
  • 개봉: 1995년
  • 감독: 론 하워드
  • 출연: 톰 행크스, 케빈 베이컨, 빌 팩스턴, 에드 해리스, 게리 시니스
  • 음악: 제임스 호너
  • 장르: 드라마, 어드벤처, 실화
  • 러닝타임: 140분
  • 개인 평점: ★★★★★ (5/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실화 바탕의 드라마를 좋아하는 분
  • 우주, NASA, 과학에 관심 있는 분
  • 팀워크와 위기관리 사례에서 배움을 얻고 싶은 분
  • 톰 행크스와 에드 해리스의 묵직한 연기를 보고 싶은 분
  • 긴장감 넘치면서도 인간적인 감동을 주는 영화를 찾는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