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빅(Big, 1988) –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소원이 이루어졌을 때

by 아침햇살 101 2025. 12. 12.

빅

놀이공원에서 던진 소원, 인생을 통째로 바꿔버리다

지금은 나이를 먹을만큼 먹어서 다시 '어린시절'로 돌아가고 싶다. 하지마 나도 아이였을때에는 '어른'이 되고싶지 않았을까?

‘빅’을 처음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한 번쯤 같은 상상을 해봤을 것이다. “내가 하룻밤 사이에 갑자기 어른이 된다면?” 영화는 이 익숙한 상상을 아주 직접적으로 밀어붙인다. 놀이공원에서 키 제한 때문에 롤러코스터를 타지 못한 13살 소년 조쉬는, 이상하게 생긴 Zoltar 기계 앞에서 소원을 빈다. “빨리 어른이 되게 해 주세요.” 다음 날 아침, 거울 속에는 낯선 어른의 얼굴, 그러나 마음은 여전히 아이인 자신의 모습이 서 있다.

이 설정만 놓고 보면 단순한 판타지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빅’이 특별한 이유는 그 이후의 과정을 꽤 진지하게 따라간다는 데 있다. 집에서는 정체를 의심받아 쫓겨나다시피 하고, 세상으로 나온 그는 어른의 몸으로 처음 마주하는 현실 앞에서 갈팡질팡한다. 호텔의 음침한 복도, 밤마다 들려오는 싸움 소리, 처음 받아보는 월급봉투의 무게까지, 영화는 “어른이 된다는 것”이 단지 키만 크고 돈을 버는 일이 아니라는 사실을 꾸준히 상기시킨다.

 

몸만 큰 소년, 어른들의 세계에 뛰어들다

조쉬가 장난감 회사에 취직하는 과정은 이 영화의 매력을 가장 잘 보여주는 부분이다. 이력서도 제대로 못 쓰고, 양복도 어설프게 입은 채 면접장에 앉아 있는 그의 모습은 코미디처럼 보이지만, 면접관이 “특기가 뭐냐”고 물었을 때 그는 진심으로 대답한다. “비디오 게임이요. 장난감도 잘 알아요.” 어른들의 세계에서는 별로 쓸모 없다고 여겨지는 관심사가, 장난감 회사에서는 오히려 가장 필요한 능력이 된다.

톰 행크스의 연기는 여기서 빛을 발한다. 겉모습은 완전히 어른인데, 장난감 앞에서 눈이 반짝이는 표정, 사소한 농담에 깔깔거리며 웃는 모습, 회의 자리에서 진지하게 “이건 재미없어요”라고 말하는 태도에는 분명히 13살 소년의 결이 남아 있다. 그 순수함은 회의실에 앉아 숫자와 시장 점유율만 이야기하던 어른들에게 오히려 신선한 충격을 준다. “아이들이 정말 원하는 건 뭘까?”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지게 만들기 때문이다.

 

피아노 위를 뛰어다니는 장면이 남긴 것

‘빅’을 이야기할 때 FAO 슈워츠 장난감 가게에서의 피아노 장면을 빼놓을 수 없다. 바닥에 깔린 커다란 피아노 키 위를 밟으며 조쉬와 사장이 함께 연주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상징 같은 순간이 되었다. 이 장면이 단순히 재미있는 퍼포먼스에 그치지 않는 이유는, 어른들의 세계가 잠시 아이의 리듬을 따라가는 순간이기 때문이다.

처음에 사장은 장난감 회사의 대표로서 조쉬를 ‘이상한 신입사원’ 정도로만 바라본다. 하지만 피아노 위에서 함께 연주하며 웃다 보면, 둘 사이는 직장 상사와 부하직원이 아니라 ‘같이 노는 사람’이 된다. 이 짧은 장면은 “아이처럼 논다”는 것이 유치함이 아니라, 창의성과 감수성을 회복하는 일이라는 메시지를 자연스럽게 전한다. 사실 어른이 된다는 것은 놀 줄 아는 법을 잊어버리는 과정이기도 하다는 걸 영화는 넌지시 보여준다.

 

어른의 연애와 아이의 마음이 충돌할 때

내 기억으로는 언제 보았는지 기억나지 않을정도로 오래된 영화이다. 그 당시에는 정말 재미있게 보았다는 기억이 있다. 그리고 지금 다시 보고 있을때에는 내가 좋아하는 '톰행크스'가 이렇게 젊었던 때가 있었구나 하는 생각과 우리집 아이와 나와의 '소통'의 문제등을 좀 돌아보는 시간을 가졌다. 결국 나도 우리집 딸과 같은 시기를 지났지만 다 잊어버리고 아빠로서 아이를 대할 때 아이의 마음을 이해해주지는 못하고 있는지 그리고 어른의 시선으로 아이를 제단하고 있는게 아닌지 돌아보게 되었다.

 

조쉬가 회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하면서, 동료인 수전과 미묘한 관계가 형성되는 부분은 이 영화가 가진 가장 복잡한 지점이다. 외형만 보면 어른 남자와 커리어우먼의 로맨스지만, 관객은 이미 알고 있다. 조쉬의 마음은 여전히 중학생이라는 것을. 수전과 함께 파티에 가서도 그는 새우를 한 입에 집어삼키고, 사무실 장난감에 더 관심을 보인다. 호텔 방에서 수전이 은근히 분위기를 잡아도, 그는 침대 위에서 “트램폴린이야!”라며 뛰어다닌다.

이 로맨스는 지금의 감각으로 보면 다소 불편하게 느껴질 수도 있다. 하지만 영화는 그 불편함을 정면으로 돌파하지 않고, 은근하게 피해 가는 쪽을 택한다. 둘의 관계는 육체적 장면보다는 서로의 외로움을 달래주는 정서적인 교감으로 더 많이 묘사된다. 특히 수전이 조쉬의 ‘진짜 나이’를 알게 된 뒤의 반응이 중요하다. 그녀는 충격을 받지만, 동시에 자신이 얼마나 오랫동안 “어른스럽게만” 살아왔는지를 돌아보기 시작한다. 조쉬는 그녀에게 잃어버린 10대를 떠올리게 해준 존재이기도 했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는 말의 이면 그리고 돌아가기

어린 시절 누구나 한 번쯤 “빨리 어른이 되고 싶다”고 말해본다. 하고 싶은 것도 많고, 제한도 많고, 어른의 세계는 자유로워 보이니까. ‘빅’은 그 소원이 실제로 이루어졌을 때 벌어지는 일을 통해, 우리가 어른에게 기대하는 것과 실제 현실 사이의 간극을 보여준다.

조쉬는 돈을 벌고, 멋진 집에서 살고, 원하는 장난감을 마음껏 살 수 있다. 하지만 밤에 혼자 있을 때 그는 여전히 엄마를 그리워하는 아이일 뿐이다. 친구와 장난치고 게임하던 시간이 그립고, 집밥이 그립고, 누군가에게 기대 울 수 있는 어깨가 그립다. 어른이 되면서 손에 넣은 것들보다, 잃어버린 것들이 더 크게 느껴지는 순간이 찾아온다. 이 지점에서 영화는 조용히 묻는다. “정말로 어른이 되고 싶었던 건지, 아니면 어른처럼 보이고 싶었던 건지.”

영화의 후반부, 조쉬는 중대한 결정을 내려야 한다. 회사에서 인정받기 시작했고, 어른의 연애도 시작되었지만, 그가 원래 있던 자리에는 여전히 13살 소년의 시간과 가족이 남아 있다. 그는 결국 Zoltar 기계를 다시 찾아가 소원을 빈다. “다시 아이로 돌려달라”고.

이 선택은 단순히 ‘원래대로 되돌리는’ 해피엔딩이 아니다. 조쉬는 어른이 된 시간을 통해, 어른들이 왜 그렇게 지치고 예민해져 있는지 조금은 이해하게 되었다. 동시에 아이로서 누릴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짧고 소중한지도 깨달았다. 다시 소년의 몸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마지막 장면에서, 그의 발걸음은 처음과는 다른 무게를 가진다. 같은 집으로 돌아가지만, 그 집을 바라보는 시선은 이미 한 번의 “빅”을 겪은 뒤의 눈이다.

 

지금 우리에게 ‘빅’이 남겨주는 질문

1988년에 만들어진 영화지만, ‘빅’이 지금 봐도 촌스럽지 않은 이유는 판타지적 설정 뒤에 놓인 질문이 여전히 유효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여전히 성장과 성공을 빨리 이뤄야 한다고 재촉하고, “어른스러운 태도”를 미덕으로 여긴다. 아이들에게도 일찍부터 효율과 경쟁을 요구한다. 그 과정에서 많이 잃어버리는 것이 바로 “아이의 시간”이다.

‘빅’은 묻는다. 어른이 되는 과정에서 정말 다 버려도 되는 것과 끝까지 지켜야 할 것이 무엇인지. 장난감 회사 회의실에서 진심으로 “이건 재미없어요”라고 말할 수 있는 용기, 피아노 위를 뛰어다니며 마음껏 웃을 수 있는 자유, 친구와 함께 자전거를 타고 골목을 누비던 시간 같은 것들 말이다. 어른이 된 지금도 그 감각을 조금이라도 붙잡고 있다면, 우리는 아직 완전히 나이를 먹어버린 건 아닐지도 모른다.

‘빅’은 단지 “아이의 몸에 갇힌 어른”이나 “어른 몸에 갇힌 아이”의 이야기만은 아니다. 그 경계를 넘나들며, 우리 안에 여전히 공존하고 있는 두 얼굴을 비춘다. 그리고 조용히 권한다. 때때로는 서류와 숫자를 내려놓고, 한 발짝 뒤로 물러나 피아노 건반 위를 맨발로 밟아 보라고. 그 순간만큼은 나이와 직함을 잠시 잊고, 다시 한 번 “빅”이 되어도 괜찮다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