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라이언 일병 구하기 - 전쟁의 참혹함과 희생의 의미

by 아침햇살 101 2025. 12. 6.

라이언 일병 구하기
라이언 일병 구하기

1998년, 극장을 나오며 할 말을 잃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극장에서 본 날을 아직도 기억한다. 오프닝 27분간 이어지는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을 보는 동안, 숨 쉬는 것조차 잊고 있었던 것 같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를 정말 좋아했었고 지금까지 자라오면서 2차대전 소재 영화, 우리나라 6.25전쟁, 월남전등을 소재로 한 영화들을 많이 보아왔지만 이 영화처럼 전쟁의 참담함을 리얼하게 보여준 영화는 없었던듯 하다. 그리고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에서는 흔들리는 화면때문에 멀미가 났을정도 였지만 마치 내가 전장을 뛰어다니고 있다는 느낌이 들정도로 인상이 깊게 남아 있었다.

스티븐 스필버그가 만든 이 전쟁 영화는 이전의 모든 전쟁 영화를 바꿔놓았다. 그전까지 전쟁 영화에는 어딘가 영웅적이고 낭만적인 구석이 있었다. 하지만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달랐다. 전쟁을 있는 그대로 보여줬다. 피가 튀고, 내장이 쏟아지고, 사람들이 엄마를 부르며 죽어가는 모습을 가감 없이 담았다. 이건 전쟁 다큐멘터리가 아니라 극영화였는데도 너무나 사실적이어서, 실제 참전용사들이 PTSD 증상을 보였다는 이야기도 있었다.

톰 행크스가 밀러 대위를 연기했는데, 그의 필모그래피 중에서도 가장 인간적인 역할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 전에는 평범한 고등학교 교사였던 사람이 전쟁터에서 분대를 이끌어야 하는 상황. 두려움을 느끼지만 내색하지 않고, 부하들을 지켜야 한다는 책임감에 짓눌리면서도 끝까지 임무를 수행하는 모습이 너무나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전쟁의 진짜 모습

노르망디 상륙작전 장면은 영화사에 길이 남을 명장면이다. 스필버그가 핸드헬드 카메라를 사용하면서 마치 종군 기자가 찍은 것 같은 느낌을 만들어냈다. 화면이 흔들리고, 초점이 나가고, 피가 렌즈에 튀었다. 음향도 놀라웠다. 총알이 물속에서 쏘오옥 하는 소리, 폭탄이 터질 때 귀가 먹먹해지는 효과, 병사들의 비명. 극장 음향으로 들으니 정말 전쟁터에 있는 것 같았다.

지금까지 2차 세계대전을 정석으로 배우지는 못한거 같다. 학교에서 배웠을때에는 주로 우리나라 일제 강점기가 주제가 된다. 독일은 유럽과 미국의 문제였다. 우리나라는 일본이 문제였다. 교과서에는 "1944년 6월 6일, 연합군이 노르망디에 상륙하여 제2전선을 형성했다"라고 간단히 나와 있다. 하지만 그 한 줄 뒤에 얼마나 많은 희생이 있었는지 우리들은 모른다. 그날 하루 동안 연합군 1만 명 이상이 사망했다. 해변은 시체로 뒤덮였고, 바닷물이 붉게 물들었다.

영화는 그 참상을 보여준다. 상륙정 문이 열리는 순간 기관총 세례를 받아 병사들이 쓰러진다. 바다에 떨어진 병사들은 무거운 장비 때문에 익사한다. 팔이 잘려나가고, 내장이 쏟아진다. 한 병사가 자기 팔을 찾아 헤맨다. 의무병이 부상병을 치료하려 하지만 너무 많다. 한 병사가 "엄마..."를 부르며 죽는다.

이 장면들이 잔인해서 보기 힘들었지만, 필요한 장면이었다고 생각한다. 전쟁을 미화해서는 안 되니까. 전쟁은 영웅적이지 않다. 그냥 끔찍할 뿐이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한 여덟 명의 여정

영화의 중심 플롯은 제임스 라이언 일병을 찾는 임무다. 라이언의 형제 셋이 모두 전사했고, 어머니에게 아들 하나라도 돌려보내기 위해 라이언을 찾아 귀국시키라는 명령이 떨어진다. 밀러 대위와 일곱 명의 병사들이 전쟁터 한복판에서 한 명의 병사를 찾아 나선다.

처음에는 이 설정이 비현실적으로 느껴졌다. 한 명을 구하기 위해 여덟 명을 위험에 빠뜨린다는 게 말이 되나? 하지만 영화를 보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이건 단순히 라이언 한 명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쟁 속에서 인간성을 지킬 수 있는가의 문제였다.

밀러 대위의 부하들도 처음에는 불평한다. "왜 우리가 한 놈 때문에 죽어야 하는데?" 특히 라이벤 일병(에드워드 번스)이 계속 투덜거린다. 하지만 밀러 대위가 말한다. "이 임무를 수행하면, 집에 돌아갈 자격이 생기는 것 같아." 전쟁에서 너무 많은 사람을 죽였고, 너무 많은 끔찍한 일을 봤다. 한 사람이라도 구한다면 그게 속죄가 될 수 있을까?

중간에 독일군 포로를 붙잡는 장면이 있다. 부하들은 그냥 죽이자고 한다. 하지만 밀러 대위는 풀어준다. 인간성을 지키기 위해서 하지만 나중에 그 독일군으로 인해 동료들이 희생되고 끝내 다시 나타나서 밀러 대위를 쏜다. 인간성을 지키려다가 죽는다. 전쟁의 아이러니다.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

이 영화가 특별한 이유는, 여기에는 슈퍼히어로가 단 한 명도 나오지 않는다는 점이다. 모두 평범한 사람들이다. 밀러 대위는 펜실베이니아 고등학교의 영어 교사였다. 전쟁 전에는 학생들에게 세익스피어를 가르쳤다. 업햄 상병(제레미 데이비스)은 프랑스어와 독일어를 공부하던 서기였다. 총도 제대로 못 쏜다. 웨이드 의무병(지오반니 리비시)은 동네 약국집 아들이었다.

그들은 영웅이 되고 싶어서 전쟁에 온 게 아니다. 그냥 시대와 상황에 떠밀려 끌려왔다. 마음속 깊은 곳에서는 다들 집에 돌아가고 싶어 한다. 밀러 대위가 떨리는 손을 숨기려고 애쓰는 장면이 특히 인상적이었다. 병사들 앞에서 약한 모습을 보일 수 없으니까. 그게 리더의 외로움이었다.

우리 딸이 전쟁을 이해하고 받아들이게될 나이가 되면 같이 보고 싶은 영화다. 아직은 너무 폭력적이고 잔인해서 지금은 보여줄 수 없지만, 나중에는 꼭 함께 보고 싶다. 전쟁이 무엇인지, 평화가 얼마나 소중한지 알려주고 싶다. 그리고 이야기하고 싶다. 네가 지금 누리는 평화가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것을 특히 우리나라는 일제 강점기때 독립운동, 6.25전쟁때 국군과 연합군의 희생을 통해서 지금 이나라가 있기에 꼭 알려주고 싶다.

마지막 전투와 희생의 의미

영화 마지막 전투 장면도 압도적이다. 라메유 마을의 다리를 지키는 전투. 소수의 미군과 독일군 기갑부대의 대결이다. 객관적으로 보면 이길 수 없는 싸움인데도 그들은 끝까지 싸운다. 라이언을 지키기 위해, 그리고 자신들에게 주어진 임무를 완수하기 위해.

동료들은 한 명씩 죽어간다. 멜리시(애덤 골드버그)가 독일군과 몸싸움을 벌이다가 결국 나이프에 찔려 죽는 장면은 보는 것만으로도 숨이 막힐 정도로 고통스럽다. 바로 옆방에 있던 업햄은 두려움 때문에 꼼짝도 하지 못한 채 서 있기만 한다. 밀러 대위도 끝내 쓰러진다. 그리고 라이언에게 마지막 말을 남긴다. "가치 있게 살아." 그 한 문장이 지닌 무게가 얼마나 버거운지, 영화가 끝나고도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영화는 여기서 현재로 돌아온다. 노년의 라이언(해리슨 영)이 가족들과 함께 밀러 대위의 묘지를 찾는다. 무덤 앞에 무릎을 꿇고 말한다. "매일 좋은 사람이 되려고 노력했습니다. 좋은 남편이 되려고, 좋은 아버지가 되려고. 제가 가치 있게 살았기를 바랍니다."

이 장면에서 눈물이 났다. 밀러 대위가 요구했던 건 영웅이 되라는 게 아니었다. 그냥 좋은 사람이 되라는 거였다. 그게 그들의 희생을 의미 있게 만드는 유일한 길이었다.

스필버그의 장인정신과 진실성

스필버그는 이 영화를 만들면서 실제 참전용사들을 직접 만나 이야기를 들었다고 한다. 그들의 증언을 바탕으로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쟁을 재현하려고 애썼다. 촬영감독 야누스 카민스키와 함께 색감도 당시 기록 영상처럼 의도적으로 탈색시켰다. 밝고 선명한 색이 아니라, 약간 칙칙하고 거친 색감이었다. 화면 자체에서부터 전쟁의 공기가 느껴지게 만들었다.

배우들도 실제 군사훈련을 받았다. 톰 행크스를 제외한 배우들은 10일간 혹독한 부트캠프를 거쳤다고 한다. 그래야 현장에서 톰 행크스를 진짜 상관처럼 느끼고 자연스럽게 존경하게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다. 맷 데이먼만 일부러 마지막에 합류시켰다고 한다. 다른 배우들이 그를 향해 약간의 질투와 반감을 느끼도록, 실제로 "왜 우리가 저 놈을 구해야 하는데?"라는 감정이 자연스럽게 나올 수 있도록.

존 윌리엄스의 음악도 놀라울 만큼 절제되어 있었다. 보통 스필버그 영화에서는 웅장한 오케스트라 음악이 강하게 깔리는데, 이 영화는 달랐다. 전투 장면에는 거의 음악이 없다. 총소리와 폭발음만 들린다. 음악은 조용한 장면, 슬픈 장면, 추모의 순간에만 살짝 들어온다. 그래서 오히려 더 효과적이었다.

전쟁 영화의 새로운 기준

'라이언 일병 구하기' 이후 전쟁 영화는 확실히 달라졌다. '밴드 오브 브라더스', '블랙 호크 다운', '허트 로커', '1917' 같은 영화들이 뒤이어 나왔다. 모두 전쟁을 최대한 사실적으로, 전투 장면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려 했다. 스필버그가 이 영화로 만들어놓은 기준을 따르고, 또 넘어서 보려고 한 작품들이다.

1999년 아카데미 시상식에서 이 영화는 다섯 개 부문을 수상했다. 감독상, 촬영상, 편집상, 음향상, 음향편집상. 하지만 정작 작품상은 '셰익스피어 인 러브'가 가져갔다. 많은 사람들이 고개를 갸웃거렸다. 지금도 영화 역사상 가장 논란이 많은 시상식 중 하나로 자주 언급된다.

그래도 솔직히 상은 크게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한다. '라이언 일병 구하기'는 이미 명작이다. 시간이 지나도 그 가치는 변하지 않는다. 전쟁의 참상을 이만큼 사실적으로 보여준 영화가 거의 없고, 희생의 의미를 이만큼 깊이 있게 파고든 영화도 많지 않다.

평화의 소중함

요즘 뉴스를 보면 걱정이 된다. 여전히 세계 곳곳에서 전쟁이 일어나고 있고, 사람들이 죽어가고 있다. 하지만 우리는 전쟁이 없는 시대, 전쟁터가 아닌 일상 속에 살고 있다는 사실을 종종 잊고 산다. 그게 얼마나 큰 행운인지 모를 때가 많다.

밀러 대위가 말했다. "매일 아침 일어나면, 어제보다 집에서 더 멀어진 것 같아." 전쟁이 사람을 어떻게 바꾸는지, 고향과 일상에서 얼마나 멀어지게 만드는지 보여주는 대사였다. 전쟁은 사람에게서 인간성을 빼앗아간다. 고향으로 돌아가지 못하게 만든다. 육체적으로는 돌아간다 해도, 정신은 영원히 전쟁터에 남는다.

학원에서 가끔 남학생들이 군대 이야기를 한다. "군대 가기 싫어요." "군대 가면 시간 낭비예요." 그럴 때마다 마음속으로 생각한다. 그래도 우리는 전쟁터에 가는 게 아니라 전쟁을 억지하기 위한 군대에 가는 거고 그 사실이 얼마나 다행인지, 그게 얼마나 큰 차이인지 생각해본다.

마치며

'라이언 일병 구하기'를 보고 나면 일상이 다르게 보인다. 평범한 하루가 얼마나 소중한지 새삼 깨닫게 된다. 가족과 함께 저녁을 먹고, 친구들과 웃고, 편하게 잠드는 것. 이 모든 게 누군가의 희생 위에 서 있다는 사실도 함께 떠오른다.

밀러 대위의 마지막 말이 계속 머릿속을 맴돈다. "가치 있게 살아." 그게 뭘까? 큰 업적을 이루라는 의미일까? 나는 아니라고 생각한다. 그냥 좋은 사람이 되는 거다. 가족을 사랑하고, 이웃을 돕고, 정직하게 사는 것. 그게 그들의 희생을 헛되게 하지 않는 길이다.

딸아이가 밤에 무서워서 내 방으로 오면 안아주며 말한다. "괜찮아, 아빠가 지켜줄게." 이렇게 말할 수 있는 평화가 고맙다. 밤에 폭탄 소리가 들릴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세상이 고맙다. 이 평화를 지켜야 한다. 다음 세대에게 그대로 물려줘야 한다.

전쟁은 답이 아니다. 절대로. 이 영화가 보여주는 것처럼, 전쟁은 그냥 끔찍할 뿐이다. 승자도 패자도 결국 모두 상처받는다. 평화가 답이다. 대화가 답이다. 이해가 답이다.

가치 있게 살자. 밀러 대위가 원했던 것처럼. 그들의 희생을 기억하자. 그리고 평화를 지키자.


영화 정보

  • 제목: Saving Private Ryan (라이언 일병 구하기)
  • 개봉: 1998년
  • 감독: 스티븐 스필버그
  • 출연: 톰 행크스, 맷 데이먼, 톰 사이즈모어, 에드워드 번스, 배리 페퍼, 애덤 골드버그, 빈 디젤, 지오반니 리비시
  • 음악: 존 윌리엄스
  • 장르: 전쟁, 드라마
  • 러닝타임: 169분
  • 평점: ★★★★★ (5/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사실적인 전쟁 영화를 보고 싶은 분
  • 스필버그 감독의 걸작을 경험하고 싶은 분
  • 희생과 의무에 대해 생각해보고 싶은 분
  • 역사를 기억하고 싶은 분
  • 평화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은 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