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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팅힐 리뷰 - 평범한 남자와 슈퍼스타의 사랑, 불가능해 보이지만 아름다운 이야기

by 아침햇살 101 2025. 11. 24.

노팅힐
노팅힐

비 오는 저녁, 우연히 다시 본 영화

어제 저녁 퇴근길, 갑자기 소나기가 쏟아졌다. 차 안에서 빗소리를 들으며 잠시 멍하니 있다가 문득 '노팅힐(Notting Hill, 1999)'이 떠올랐다. 영화 속에서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가 비를 맞으며 걷던 장면 때문이었을까. 집에 도착해서 늦은 저녁을 먹고, 아이가 잠든 후 아내와 함께 소파에 앉아 이 영화를 다시 틀었다.

20년도 넘게 지난 영화지만, 첫 장면부터 미소가 지어졌다. 노팅힐의 거리 풍경, 작은 서점, 그리고 평범한 일상. 화려한 할리우드 스타의 세계와는 너무나 대조적인 런던의 소박한 동네. 이 대비가 이 영화의 매력이다.

휴 그랜트, 영국 신사의 정점

'노팅힐'에서 휴 그랜트가 연기한 윌리엄은 아마도 그의 필모그래피에서 가장 완벽한 캐릭터일 것이다. 작은 여행 서적 서점을 운영하는 평범한 남자. 이혼한 전 아내 때문에 집을 빼앗기고, 친구들과 어울려 소소한 일상을 살아간다. 그는 특별할 것 없는 사람이다. 바로 우리 같은 사람.

휴 그랜트 특유의 더듬거리는 말투, 어색한 미소, 그리고 영국식 유머가 이 캐릭터와 완벽하게 어울린다. 특히 할리우드 최고의 스타 안나 스콧(줄리아 로버츠)과 마주쳤을 때의 당황스러움이 너무나 자연스럽다. 그는 멋진 말을 하려고 하지만 번번이 실수하고, 그 실수가 오히려 더 매력적이다.

영화 초반, 윌리엄이 서점에서 오렌지 주스를 쏟고 안나와 부딪히는 장면. 그리고 자신의 집에서 옷을 갈아입게 해주는 장면. 이 모든 상황이 어색하고 우연처럼 보이지만, 그래서 더 진짜 같다. 계산된 로맨스가 아니라 실제로 일어날 법한 우연.

윌리엄의 집에서 안나가 샤갈의 그림을 보며 "행복한 염소"를 언급하는 장면도 인상적이다. 짧은 대화지만, 두 사람 사이에 무언가가 통한다는 걸 보여준다. 거대한 언어가 아니라 작은 공감으로 시작되는 관계. 그게 진짜 사랑의 시작이 아닐까.

줄리아 로버츠, 스타의 외로움을 연기하다

줄리아 로버츠는 이 영화에서 자기 자신을 연기한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할리우드의 톱스타 안나 스콧. 전 세계 사람들이 그녀를 알고, 사랑하고, 동시에 끊임없이 판단한다. 언론은 그녀의 사생활을 파헤치고, 사람들은 그녀가 완벽하기를 바란다.

하지만 안나도 그냥 한 명의 여자일 뿐이다. 외롭고, 사랑받고 싶고, 평범한 행복을 꿈꾼다. 영화 중반, 윌리엄의 집에서 친구들과 저녁을 먹는 장면이 이를 잘 보여준다. 그녀는 스타로서가 아니라 한 명의 게스트로 대접받고 싶어 한다. 그리고 "가장 슬펐던 생일"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며, 자신도 상처받는 평범한 사람임을 드러낸다.

특히 윌리엄에게 "저는 그냥 한 명의 소녀입니다. 한 남자 앞에 서서 그가 자신을 사랑해달라고 부탁하는"이라고 말하는 장면은 이 영화의 백미다. 스타의 화려함을 벗어던지고, 한 명의 여자로서 솔직하게 마음을 고백하는 순간. 줄리아 로버츠의 눈빛이 그 진심을 완벽하게 전달한다.

노팅힐이라는 공간, 또 하나의 주인공

이 영화의 제목이기도 한 노팅힐은 런던 서부의 실제 동네다. 영화를 보고 나면 누구나 한 번쯤 이곳에 가보고 싶어진다. 좁은 골목길, 알록달록한 집들, 포토벨로 로드의 토요일 시장. 관광지라기보다는 사람들이 실제로 살아가는 동네의 느낌.

윌리엄의 서점도 실제로 존재했던 곳이다. 영화 촬영 이후 이 서점은 관광 명소가 되었고,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찾아간다고 한다. 영화 속에서 안나가 문을 열고 들어오던 그 파란 문도 여전히 그 자리에 있다.

노팅힐의 사계절이 영화 내내 흐른다. 봄의 화사함, 여름의 밝음, 가을의 쓸쓸함, 그리고 겨울의 차가움. 계절의 변화는 윌리엄과 안나의 관계 변화와 함께한다. 처음 만났을 때의 설렘, 사랑에 빠지는 기쁨, 헤어짐의 아픔, 그리고 다시 만남의 희망.

특히 벤치에 앉아 있는 장면들이 인상적이다. 영화 초반 공원 벤치에서 두 사람이 대화하는 장면, 그리고 엔딩에서 임신한 안나가 윌리엄의 무릎에 기대어 책을 읽는 장면. 같은 공간이지만 전혀 다른 의미를 가진다. 시간이 흐르고 관계가 깊어지면서, 그 공간도 함께 변한다.

스파이크와 친구들, 현실적인 조연들

이 영화의 또 다른 매력은 윌리엄의 친구들이다. 특히 그의 룸메이트 스파이크(리스 이판)는 웃음을 책임진다. 엉뚱하고 제멋대로지만, 순수하고 착하다. 그는 안나를 보고도 전혀 주눅 들지 않고 자연스럽게 대한다. 오히려 자신만의 스타일로 그녀를 당황하게 만든다.

저녁 식사 장면에서 친구들이 "가장 슬펐던 생일"을 놓고 경쟁하듯 이야기하는 장면도 좋다. 각자의 불행을 유머러스하게 풀어내면서도, 그 속에 진짜 아픔이 있다는 걸 보여준다. 안나가 자신의 이야기를 할 때, 친구들이 진심으로 공감하는 모습. 그 순간 안나는 스타가 아니라 그들의 친구가 된다.

휠체어를 탄 벨라(지나 맥키)와 그녀의 남편 맥스(팀 맥너니)의 관계도 따뜻하다. 벨라는 장애가 있지만, 친구들 중 가장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고 있다. 외적인 조건이 아니라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를 보여주는 캐릭터다.

기자회견 장면, 선택의 순간

영화 중반, 윌리엄이 안나의 남자친구인 척하며 기자회견에 참석하는 장면은 코미디이면서 동시에 씁쓸하다. 화려한 할리우드의 세계, 끊임없는 카메라 플래시, 형식적인 질문들. 윌리엄은 그 세계에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

안나의 전 남자친구가 나타나고, 윌리엔은 자신이 그녀의 세계에 속할 수 없다는 걸 깨닫는다. 호텔 복도에서 기자들에게 쫓기며 도망치는 장면은 그의 선택을 보여준다. 그는 그 세계를 원하지 않는다. 평범한 자신의 삶이 더 소중하다.

하지만 안나가 다시 찾아왔을 때, 그는 또 다른 선택을 한다. 처음에는 거절하지만, 친구들의 만류와 자신의 진심을 깨닫고 그녀를 찾아 나선다. 서점을 나서며 "세상에서 가장 멍청한 남자"라고 외치며 달려가는 장면. 그 순간 그는 자신의 두려움을 넘어선다.

음악, 감정을 더하는 완벽한 선곡

'노팅힐'의 OST는 영화만큼이나 유명하다. 엘비스 코스텔로의 'She', 로난 키팅의 'When You Say Nothing at All', 빌 위더스의 'Ain't No Sunshine' 등 주옥같은 곡들이 가득하다.

특히 'She'는 영화의 주제곡이라 할 수 있다. 윌리엄이 안나에 대해 느끼는 감정을 완벽하게 표현한다. 그녀는 평범한 사람이 도달할 수 없는 존재지만, 동시에 그가 사랑할 수밖에 없는 사람. 이 모순된 감정이 곡 전체에 녹아 있다.

영화 속에서 계절이 바뀌는 장면들 - 봄, 여름, 가을, 겨울을 거쳐 다시 봄으로 - 에 'She'가 흐른다. 대사 없이 음악과 영상만으로 시간의 흐름과 윌리엄의 마음을 보여준다. 간결하지만 강렬한 연출.

'When You Say Nothing at All'은 엔딩 크레딧에 흐르는데, 영화의 여운을 더한다. 말이 없어도 서로를 이해할 수 있다는 가사가 윌리엄과 안나의 관계를 완벽하게 설명한다.

계급 차이를 넘어선 사랑, 현대판 신데렐라?

어떤 사람들은 '노팅힐'을 현대판 신데렐라라고 한다. 하지만 조금 다르다. 신데렐라는 가난한 소녀가 왕자를 만나 신분 상승하는 이야기다. 반면 이 영화는 거꾸로다. 공주 같은 여자가 평범한 남자를 선택한다.

안나는 윌리엄을 선택함으로써 무언가를 얻는 게 아니라 오히려 포기한다. 화려한 할리우드 생활의 일부를, 완벽한 이미지를, 사생활 보호를. 그녀는 이 모든 것을 감수하고 진짜 사랑을 선택한다.

윌리엄도 마찬가지다. 안나와 함께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평범한 삶에서 벗어나야 한다. 언론의 관심, 대중의 시선, 끊임없는 비교. 그는 이 모든 것을 받아들이기로 한다.

결국 이 영화가 말하는 건 계급이나 신분이 아니라 선택이다. 서로를 위해 무엇을 포기할 수 있는가. 진짜 사랑은 완벽한 조건에서 시작되는 게 아니라 불완전함을 받아들이는 것에서 시작된다.

26년이 지난 지금, 더 현실적으로 느껴지는 이유

1999년 개봉 당시, 이 영화는 꿈같은 판타지처럼 보였다. 평범한 남자가 슈퍼스타와 사랑에 빠진다니, 가능한 일일까? 하지만 26년이 지난 지금, 오히려 더 현실적으로 느껴진다.

SNS 시대가 되면서 누구나 대중의 시선을 받게 됐다. 유튜버, 인플루언서, 스트리머. 이들도 안나처럼 끊임없는 평가와 비난에 시달린다. 유명세의 무게는 예전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경험하는 것이 됐다.

동시에 우리는 유명인들도 평범한 사람이라는 걸 더 잘 알게 됐다. 그들의 일상, 고민, 실수를 실시간으로 본다. 안나가 "저는 그냥 한 명의 소녀입니다"라고 말했던 것처럼, 실제로도 그렇다는 걸 우리는 안다.

그래서 이 영화가 더 이상 불가능한 판타지가 아니다. 서로 다른 세계에 살던 두 사람이 사랑으로 만나는 이야기. 충분히 가능하고, 실제로도 일어나는 일이다.

마치며

영화가 끝나고 나서도 한동안 여운이 남았다. 창밖은 여전히 비가 내리고 있었다. 노팅힐의 거리를 걷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포토벨로 로드 시장을 구경하고, 작은 카페에 앉아 커피를 마시고 싶었다.

하지만 곧 깨달았다. 노팅힐 같은 곳이 꼭 런던에만 있는 건 아니다. 우리 동네에도, 우리 일상에도 충분히 아름다운 순간들이 있다. 평범함 속에서 특별함을 발견하는 것. 그게 이 영화가 전하는 메시지가 아닐까.

'노팅힐'은 단순한 로맨틱 코미디를 넘어선다. 계급, 명예, 외로움, 그리고 진짜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한 이야기다.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케미스트리는 완벽하고, 런던의 풍경은 아름답고, 음악은 감동적이다.

만약 당신이 달콤하면서도 깊이 있는 로맨스를 원한다면, '노팅힐'을 추천한다. 비 오는 날 저녁, 따뜻한 차 한 잔과 함께 이 영화를 보면 어떨까. "저는 그냥 한 명의 소녀입니다"라는 대사가 가슴에 오래 남을 것이다.


영화 정보

  • 제목: 노팅힐 (Notting Hill)
  • 개봉: 1999년
  • 감독: 로저 미첼
  • 각본: 리처드 커티스
  • 출연: 휴 그랜트, 줄리아 로버츠, 리스 이판, 휴 보네빌
  • 장르: 로맨틱 코미디
  • 러닝타임: 124분
  • 평점: ★★★★★ (5/5)

이런 분들께 추천합니다

  • 휴 그랜트와 줄리아 로버츠의 팬
  • 영국 감성의 로맨틱 코미디를 좋아하는 분
  • 런던 여행을 꿈꾸는 분
  • 계급을 초월한 사랑 이야기를 원하는 분
  • 90년대 후반의 감성을 느끼고 싶은 분